글
:: 책 ::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2014)
:: 책 ::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2014)
영국 날씨에는 중용의 미덕이 흐른다. 영국인들은 날씨에서 금방 좋아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 언제나 주의 깊게 준비하는 자세와 같은 삶의 교훈을 체득한다. 이런 가운데 질서와 평온함을 선호나는 성향이 깊이 뿌리내렸다. (68p)
"우린 영국인이야!" 영국인에게는 속마음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능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폭발하지도 불붙지도 않는 국민성의 대명사이자 '뻣뻣한 윗입술'로 상징되는 영국인들의 감정 절제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84p)
하지만 영국인에 대한 수많은 수식어와 공고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일어나는데 바로 '티타임'에서다. (86p)
차가 있다는 것, 그 차를 끓이는 행위가 영국인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불안 감추기, 즉 어떤 행동이 불안하고 마땅치 않아 다른 행동 뒤로 숨는 것은 영국인들의 '날씨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89p)
일부 사회학자들은 커피하우스를 통해 커피 문화가 영국에서 꽃피었지만 차갑고 과묵한 기질상 평온함을 주는 홍차가 그들에게 더 적합했을 거라고 한다. (...) 커피처럼 강렬한 것보다 은근히 몸과 정신을 이완시켜주는 음료가 이들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91p)
17세기는 커피하우스, 18세기는 티가든이 전성기를 누렸다. 차와 커피가 다르듯 티가든은 커피하우스와 달랐다. (...) 황태자부터 노동자 계층에 이르기까지 남녀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차와 커피 값을 포함해 1~2실링만 내면 누구나 환영받는 장소였다. (...) 당시 티 테이블 위에는 'T.I.P.S'라고 적힌 작은 상자가 있었다. 이는 'To Insure Prompt Service'의 약자로 "신속하게 서비스를 할 테니 상자에 돈을 넣어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01p)
영국에서 모든 계층이 홍차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약육강식의 사냥터가 된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어린 여자아이와 최하위계층의 일꾼들이 고통스럽게 재배한 차에 카리브 해 노예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인 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휘휘 젛은 것이 바로 '영국식 홍차'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티스푼'이라는 합성어도 차와 설탕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합작품이 아닌가. (128p)
커피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를 여행하다보면 카페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마시고는 바로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서서 파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는 애초부터 여러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물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커피보다 차를 마실 때 좀더 여유롭고 마실 수 있는 양도 차가 더 넉넉하다. (141p)
상류층에서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자 구매력이 생긴 중류층에서 이를 따라했다. 이어 노동계층 역시 중간계층을 모방한다. 차를 마실 때만은 가난한 농부도 부유한 상인이 될 수 있었고, 하인도 주인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국의 홍차 문화는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남성과 여성, 사치품과 필수품이라는 극단의 요소 모두를 포함하는 특이한 경우다. (159p)
하이티는 산업혁명 시대에 서민들의 바빠진 일상이 늦은 귀가와 맞물려 생겨난 티타임이다. 애프터눈티가 상류층과 귀족들이 밤늦게 이뤄지는 화려한 만찬을 기다리는 동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면, 하이티는 시골과 도시 노동자들 그리고 서민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홍차와 더불어 칼로리가 높은 고기 등을 먹은데서 유래됐다. (216p)
* * *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것에 더 애정을 쏟는 나라 영국. 영국과 홍차의 연결고리를 찾는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은 '홍차 아우라', '홍차 스파이', '홍차 중독자'라는 키워드로 홍차의 감성과 욕망 그리고 미식을 느껴본다.
홍차가 영국과 영국민에게 어떻게 스며들게 되었는지 '아주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홍차와 관련하여 영국의 정치, 문화를 훑어 준다.
술독에 빠진 영국의 식탁을 물들인 홍차. 차 한잔에 영국인의 계층이 있고, 그들의 삶이 녹아 있다.
'보고듣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마스다 미리, 2010) (0) | 2015.05.08 |
---|---|
:: 책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2010) (1) | 2015.04.14 |
:: 책 :: 고양이 낸시 (엘렌 심, 2015) (1) | 2015.04.07 |
:: 책 :: 그들을 만나러 간다 파리 (마리나 볼만멘델스존, 2012) (0) | 2015.04.03 |
:: 책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2012) (1) | 201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