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1943)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저자
마르셀 에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8-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프랑스 문학을 빛내는 희귀한 보석 ‘두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뒤티유욀은 꼼짝달싹 못 하고 담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그는 여전히 돌과 한 몸이 된 채 그 담 속에 있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 겨울밤이면 이따금 화가 장 폴이 기타를 들고 소리가 잘 울리는 적막한 노르뱅 거리에 나가 담 속에 갇힌 가엾은 벗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추위에 곱은 손가락들로부터 기타의 선율이 날아올라 달빛이 방울방울 떨어지듯 담벽 속으로 동당동당 스며든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35p)

6월 32일

시간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평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 아침 어떤 가게에 들어가 신문을 사려고 하는데, 신문의 날짜가 6월 31일로 되어 있었다. "아니, 이 달이 31일까지 있었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가게 여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문기사의 제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칠 수상 6월 39일에서 6월 45일 사이에 뉴욕 방문'

「생존 시간 카드」 (67p)

"뤼시앵, 네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네가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놀랐다. 그 동안 내게 보여준 것과는 전혀 딴판인 그 글투가 너무나 불쾌해서 주저없이 너에게 3점을 주었다. 주제 전재가 빈약하다고 내가 너를 나무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과 정반대되는 잘못에 빠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여섯 쪽을 채우기 위해서 줄곧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했더구나. 하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어색하게 멋을 부린 그 글투이다. 너는 문장을 그런 식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글은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지."

「속담」 (95p)

"사실은 어머니께 장화 얘기를 했어. 그걸 나에게 사주시겠대. 집에 돌아가면 그걸 갖게 될 거야."

앙투안은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장화는 이제 공동의 보물이 아니었다. 남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고 누구나 꿈을 길어올릴 수 있었던 모두의 우물이 아니라 한 사람만의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칠십 리 장화」 (133p)

* * *

"사람들은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아이들이나 하는 일로 여기기가 십상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현실과 단절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역시 경이로운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담은 어른들을 괴롭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불안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고 때로는 비통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 잡지 『프랑스의 환희』(1946), 마르셀 에메-

* * *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마르셀 에메의 소설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마냥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아서인지 묘하게 설득된다. 시간이 정말 상대적이 된다면? 소오름. 

다음 파리 여행에는 노르뱅 거리에서 마르셀 에메를 만나야겠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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