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2007) 


오 해피데이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재인 | 2009-10-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티격태격 지지고 볶아도 집이 있어 행복한 여섯 남녀와 그 가족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흐음, 그렇구나. 노리코는 기운이 쭉 빠졌다. 세상은 15년 동안 전업 주부로 살아온 노리코가 주눅 들기에 충분할 만큼 힘센 자가 판을 치고 있다. (13p)

물건의 인기가 마치 자신의 인기만 같았다.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았던 것도 처녀 시절 잠깐뿐, 결혼한 후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아, 들이쉬는 공기까지 상쾌했다. (19p)

가족이란 엄마와 아내에게는 참 무관심하다. 집 안에 당연히 있는 것, 이라고밖에 여기지 않는다. (27p)

두 손으로 뺨을 마사지하면서 생각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여배우는 타인의 시선을 받으면서 아름다워진다고 하지 않는가. 여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한다. 나는 옥션에서 낙찰자에게 '아주 좋다'는 평가와 감사를 받아 자신감을 얻고 젊어졌는지도 모른다. (31p)

피식 웃는 한편 공감이 갔다. 너나 나나 모두 똑같다. 사람은 관계를 원한다. (39p)

서니 데이라. 어디든 가고 싶다. 바다든 산이든. 결혼한 후로 가족 아닌 사람과는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다. 늘 집을 지켰다.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마흔 세 살이 되었다. (45p)

노리코는 몇 번이나 꽃을 보고, 그럴 때마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 행복한 기분으로 앞으로 10년은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가족이 있다. (48p)

결국 무인양품에서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며 그릇과 조리도구까지 사고 말았다. 트렁크가 짐으로 가득찼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 좋은 피로감이었다. 쇼핑이 의외로 즐거웠다. (62p)

"남자는 말이야, 혼자서 방을 쓸 수 있는 건 가난한 독신 시절까지가 아닐까 싶어. 그런데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잖아. CD나 DVD는 얼마든지 살 수 있어. 그리고 비싸기는 하지만 오디오 세트도 마음먹으면 살 수 있고. 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단 말씀이야……." (78p)

"가구도 그렇고 조명도 세련되었지? 독신자들이 꿈꾸는 방이야. 좀 좁다 싶은 게 더 좋아. 무엇이든 금방 손에 닿으니까. 난 이 방에 있으면 젊은 시절이 생각나고,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에 재미있고, 푸근하고, 그래서 툭하면 들렀던 거야." (87p)

"그럼 이만 간다." 사카이는 발길을 돌려 힘차게 거실을 나가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마사하루는 잠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야 음악을 마냥 틀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볼륨을 줄였다. 옛날에 끔찍이도 좋아했던 스팅이 <셋 뎀 프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90p)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식탁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키를 두드린다. 마냥 켜 있는 라디오에서는 주부를 상대로 인생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흐른다. 히로코는 이렇게 소박한 나날이 싫지는 않다. 크게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마흔 살. 명실상부한 아줌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나이다. (103p)

다르게 살 수도 있었으려나. 히로코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삼십 대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지냈다. 인기 있다는 레스토랑 한 번 가지 않았다. 그러다 아줌마가 되고 말았다. 세상 일은 전부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듣는다. (122p)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잠시 동안의 자유 시간. 딱히 백화점에 오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달리 갈 곳이 없으니까 발길이 절로 향하고 만다. 한동네에 같이 가자고 할만한 사람도 없다. 혹시라도 서먹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은 거리를 두게 된다. 주부는 모두 혼자다. (125p)

'빅 서프라이즈, 금일 당사 도산!' (139p)

유스케는 몸이 둥실 뜨는 가벼움을 느꼈다. 홀가분해진 후에야 중압감이 컸다는 것을 느꼈다. 나만 믿고 따르라고 호언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만큼의 책임감은 있다. (142p)

먹으면서 점차 풀이 죽었다. 자신이 제공한 반찬이 맛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반찬에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견뎌 낼까. (146p)

우리 아빠 회사가 망했어요,라.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이들은 솔직해서 좋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내일부터는 가슴을 좍 펴고 아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올 수 있다. (148p)

"낙담하지 말라고. 고진감래라고, 시련은 견뎌 내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니까. 인간 도처에 청산은 있으니……." (157p)

노인이 종이봉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유스케에게 건넸다. <역경을 이겨 내기 위한 50가지 명언>이라는 책이었다. 역경이라. 표정을 관리하기가 곤란했다. (173p)

아쓰코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구나. 우리 부부가 세간의 오해를 사고 있구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의 뿌리가 깊잖아." (177p)

잘되었지, 뭐.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잘되었다는 건지, 자신도 잘 몰랐지만. (183p)

"난 그런 아파트나 있었으면 좋겠다." (189p)

"나 말이지, 이 기회를 놓쳤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시나가와 역 주변은 사무실만 많지 커튼 가게는 한 군데도 없단 말이야. 재빨리 자리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늘 이렇다. 재빠른 사람이 이긴다는 얘기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끝장이라는 뜻이 아닌가. (191p)

에이치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얼떨결에 하루요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상대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아, 그렇구나. 단도직입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우리 남편은 이런 식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225p)

뾰족 서 있던 것이 흐물흐물 꺾인 느낌이었다. 고슴도치가 치켜세웠던 바늘을 옆으로 누인 듯한. 아니면 네모난 치즈의 각이 녹아내린 듯한. 기분 전체가 둥글둥글해졌다. (227p)

* * *

요즘 왜인지 계속 기분이 축축해서  노랑노랑한(밝고 산뜻한) 책을 찾던 중 발견한 소설이다. 제목처럼 '해피'한 하루가 필요했던 것일까. 우연히 읽게 된 것 치고 꽤 잘 선택한 것 같다. (묘하게 끌리는 표지 또한 오쿠다 히데오의 느낌을 발산한다. 매력있다.)

[Sunny day], [우리 집에 놀러 오렴], [그레이프프루트 괴물], [여기가 청산], [남편과 커튼], [아내와 현미밥] 이렇게 6편의 단편으로 묶인 <오 해피데이>. 각기 다른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지만 결국엔 사랑으로! 마무으리 되는 여섯 가족의 이야기이다.

늘 곁에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가족. 일상에선 그리 부각되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까, 잠시 잊고 산다. 하지만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있다 없으면? 적어도 난, 허전하고 이내 불안해진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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