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기억 전달자[The Giver] (로이스 로리, 1993)

 


기억 전달자

저자
로이스 로리 지음
출판사
비룡소 | 2007-05-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84』『멋진 신세계』『시녀 이야기』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마을은 정확히 질서가 잡혀 있었고 선택은 아주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82p)

"조너스, 조너스, 조너스!"

조너스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새로운 직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아기 칼렙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걸 느꼈다. (...)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이 가득 차는 것도 느꼈다. 조너스는 기억보유자로 선출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무엇이 자신이 될지 알지 못했다. (109p)

지난 십여 년 동안 여기 아이들 모두가 언어의 정확한 사용법을 훈련받았지만 어제 조너스가 경험한 햇볕의 따스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조너스로서는 조용히 듣기만 하는게 더 쉬웠다. (152p)

"모든 게 똑같으니까 선택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을 때 제가 옷을 고르고 싶어요! 파란 옷을 입을까, 빨간 옷을 입을까 하고 말이에요." (166p)

"우리에게 아직 사랑이 있었으면 해요." (215p)

"저는 그 사람들이 만든 불빛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그 따뜻함도요." (216p)

"난 오늘 슬펐어."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고 가족들은 어머니를 위로했다. 하지만 조너스는 진짜 슬픔을 느꼈다. 뼈저린 비통함을 겪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빨리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진짜 슬픔은 훨씬 더 심오한 감정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저 느낄 수 있을 뿐. (224p)

조너스가 물었다. "아버지가 아기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나요?" "아니야, 난 단지 선택할 뿐이란다. 아기들 체중을 달아서 무거운 아이를 옆에서 기다리는 보육사에게 넘겨 준 다음, 가벼운 아이를 안아 씻기고 다독거리지. 그런 다음에 나는 조촐하게 임무 해제 기념식을 하고……." 아버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가브리엘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다음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지." 아기에게 말할 때 쓰는 아주 달콤한 목소리였다. 거기다 아버지는 친숙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었다. (232p)

* * *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 그 가운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단 하나의 '기억 보유자(Receiver)'와 새로운 기억 보유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기억 전달하는 '기억 전달자(The Giver)'의 이야기이다.

이름, 배우자(결혼), 가족 구성, 직위(직업) 그리고 생명 유지의 지속여부까지 정해진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부적합 판결을 받으면 '임무 해제'라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와 기억 보유자를 제외하곤 누구도 임무 해제의 의미를 모른다. 임무 해제를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곳은 너무 명료해서 무섭기까지 하다.  

공동체는 '기념식'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고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위험요소가 없고 늘 같은 안정적인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대신 그러한 삶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 즉시 '임무 해제'라는 제재가 가해진다. 즉,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극단적인 제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 없이 완벽한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 * *

1994년 뉴베리 상을 수상한 <기억 전달자>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자연과 인공, 전쟁과 평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숨어있다. (역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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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일상의 유혹, 기호품의 역사 (탄지옌광, 2015)

 


일상의 유혹, 기호품의 역사

저자
탕지옌광 (엮음) 지음
출판사
시그마북스 | 2015-04-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귀족의 사치품에서 대중적 기호품으로 세상을 바꾼 20가지 물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세월을 타고 흐르는 향기의 역사 '향수'

누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가 '담배'

세계 정복의 여정 '커피'

매혹적인 향기와 씁쓸한 감미로움 '초콜릿'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세계 '향료'

보는 순간 빠져드는 초록빛 액체 '압생트'

1976년 파리 심판의 날 '와인'

바다의 정복자 '럼주'

길 위의 아메리칸드림 '캠핑카'

수수께끼와 같은 마력 '매직 큐브'

* * *

남들과는 다른, 특권이라 할만한 그 시절 '사치품'이 일상의 '기호품'으로 선택 가능해지기까지의 히스토리를 담은 책 <일상의 유혹, 기호품의 역사>는 유혹적인 스무가지 물건(기호품)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아우르며 알기 쉽게 소개한다.

* * *

+ 와인

자국의 와인 품질에 대해 신앙과도 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을 아찔하게 만든 사건! 넘사벽이었던 프랑스 와인의 자리를 흔들어 놓은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Stag's Leap Wine Cellars)'와 '샤토 몬테레나(Chateau Montelena)', 그리고 시음회를 연 와인 판매상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의 이야기에 와인의 와자도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시음하고 싶었다 :)  

+ + 럼주

영국에서 럼주가 '넬슨의 피(Nelson's blood)'라고 불리게 된 배경에 헉! 소리나게 놀랐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 + + 커피

우리는 찻잎을 우려낸 차 한잔을 마시며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맛에 빠지고,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되찾는다. 그러나 찻잎을 몇 차례 우려내고 나면 차향은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귀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커피는 차처럼 여러 번 우려내는 맛이 아니다. 한 번 내린 커피를 다 마신 후 또 마시려면 다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야 한다. 하나의 여정이 끝난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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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마스다 미리, 2010)

 


치에코씨의 소소한 행복. 3

저자
#{for:author::2}, 치에코씨의 소소한 행복. 3#{/for:author} 지음
출판사
애니북스 | 2015-03-31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한 번뿐인 인생을 ‘이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일명 ‘여자 공감만...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그 당시엔 전화도 자주 했었잖아." "그랬지."

"매일 밤 누구 한 사람이 전화를 걸었잖아. 자기 전에 말야. 그래서 결혼할 때 좀 섭섭했었어." "뭐가?"

"그렇잖아, 더는 전화로 "잘 자"란 말을 못하게 되니까. 사쿠짱은 안 섭섭했어?" "어? 전혀. 치에코가 내 눈앞에 있는데, 뭘."

- 제77화 세월은 흐른다 -

* * *

어른이 된 치에코 씨는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치에코 씨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언짢거나 귀찮은 일도 있지만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고 일이 재미있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만약 인생을 한 번 더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지금과 같아도 괜찮지 않을까.' 치에코 씨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살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래요? 치에코 씨.

'글쎄… 그러면 두 번째 인생은' 대가족도 괜찮겠다고 치에코 씨는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쌍둥이도 있고. 그리고 두 번째 인생이 끝나고 마지막 세 번째 인생은 다시 첫 번째인 지금과 같은 인생이면 좋겠다고 치에코 씨는 생각했습니다.

- 제85화 두 번째 인생, 세 번째 인생 -

* * *

치에코 씨는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장을 보고 있습니다. 회사원인 치에코 씨는 일이 끝나고 집 근처 전철역에 내리면 늘 남편 사쿠짱과 슈퍼에서 만나 같이 저녁 찬거리를 사는 게 일과인데요. 아니, 일과라기 보다는 소소한 데이트라 할 수 있는데요. 한 달에 몇 번 정도는 치에코 씨가 식품 매장에서 도시락을 사가는 게 두 사람의 이벤트가 됐습니다.

식품 매장을 두리번거리면서 치에코 씨는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고를 때는 자기가 먹을 것을 고를 때보다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구나. '우와, 맛있겠다~ 이것도 사쿠짱이 좋아하겠다. 돈가스도 괜찮을까~ 카레 세트도 사쿠짱이 좋아하는데~' "저기요, 2색 카레 세트 하나 주세요. 야채 카레랑 돼지고기 카레 두 종류로 할게요." 치에코 씨, 즐거워 보이네요.

- 제88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

* * *

마스다 미리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3>.

다른 사람들은 모를 '둘 만의 세계'는 평범하고도 사랑스럽다. 사쿠짱과 함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하는 치에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을 뿜어주는 사쿠짱이기에 치에코의 애정 또한 단단해 보인다.

둘이 하나가 될 순 없지만, 서로가 한 곳을 향한다는 합일이 있다면 부부의 삶은 더 유쾌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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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2010)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저자
마스다 미리,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 지음
출판사
이봄 | 2012-12-15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마스다 미리 만화, 드디어 국내 상륙!일본 30대 싱글 여성들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꽃꽃이 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지 4개월. 꽃꽃이도 즐겁고 다른 강습생들과도 잘 지낸다. 나름대로는. 그리고, 앞으로도 '나름대로'를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를 넘어서고 싶지 않은 기분. 자신을 방어하기만 하는 나. 예전부터 이랬던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37p)

"엄마가 지금 제일 원하는 건 뭐야?" (...) "고모는 '보장'을 원한대." "보장? 그런거라면 엄마는 존재감을 원해. 엄마는 가끔 말이지, 바깥 세계에서 혼자만 뒤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해~" (49p)

지금, 갖고 싶은 옷이 그다지 없어~ 외출할 일도 없으니,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이렇게도 많은 옷들이 널려 있는데. 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나인데 이 허전한 느낌은 뭘까? 그렇지만, 다들 이렇게 말하지. '사치스러운 고민'이라고. "듣기 싫어." (57p)

집안일에 지장이 없는 범위.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을 범위. 왜. 나의 세계에는 그런 조건이 붙는 걸까? (84p)

직장 동료의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내일은 그녀의 몫까지 일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내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느낌이 든다. 도와주는 횟수. 정말로 서로 돕는 거 맞나? (93p)

'영차'가 어울리게 된 나. 더이상. 사랑을 할 리도 없다. 길거리에서 뒤돌아봐 주는 사람도 없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일을 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때가 되고 보니 이미 일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일도 집안일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고 정해져 있어서 만약 일을 한다고 해도 가족이 고마워할 것도 아니다. 억지로 일을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행복한 거라고 모두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이 희미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희미해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102p)

모두가 가르쳐준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그런데 타이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109p)

"리나야, 작문! 뭐가 되고 싶다고 쓸 건지 정했니?" "음~ 몰라.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난,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120p)

"엄마~ 숙제 있잖아." "숙제?" "왜 '주'자로 단어 만들기!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어. 나 '주인'이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썼어." (121p) 

* * *

나는 태어났고 지금 여기 '있다'. 있다는 것은 이미 '존재'함을 뜻한다. 다만 나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내 삶의 우선적인 가치와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산다는 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만이 행복한 건 결코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또 누구에게나 행복도 있듯이.

나이듦, 결혼, 그리고 자녀 양육은 각기 서로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더 기쁜 삶이리라. 우리는 이 모두 취할 수 없고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 * *

나이는 선택할 수 없다! 때문에 지나가는 시간을 푸념하고 속상해하기 보단 달콤 쌉싸름한 하루를 감사하며 만끽하기를 :) 매일 아침 바란다. (하아아... 생각이 깊어지는 책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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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박영자, 2014)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

저자
박영자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4-12-2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서재 쪽으로 풍겨와 코에 스미는 부드러운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영국 날씨에는 중용의 미덕이 흐른다. 영국인들은 날씨에서 금방 좋아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 언제나 주의 깊게 준비하는 자세와 같은 삶의 교훈을 체득한다. 이런 가운데 질서와 평온함을 선호나는 성향이 깊이 뿌리내렸다. (68p)

"우린 영국인이야!" 영국인에게는 속마음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능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폭발하지도 불붙지도 않는 국민성의 대명사이자 '뻣뻣한 윗입술'로 상징되는 영국인들의 감정 절제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84p)

하지만 영국인에 대한 수많은 수식어와 공고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일어나는데 바로 '티타임'에서다. (86p)

차가 있다는 것, 그 차를 끓이는 행위가 영국인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불안 감추기, 즉 어떤 행동이 불안하고 마땅치 않아 다른 행동 뒤로 숨는 것은 영국인들의 '날씨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89p)

일부 사회학자들은 커피하우스를 통해 커피 문화가 영국에서 꽃피었지만 차갑고 과묵한 기질상 평온함을 주는 홍차가 그들에게 더 적합했을 거라고 한다. (...) 커피처럼 강렬한 것보다 은근히 몸과 정신을 이완시켜주는 음료가 이들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91p)

17세기는 커피하우스, 18세기는 티가든이 전성기를 누렸다. 차와 커피가 다르듯 티가든은 커피하우스와 달랐다. (...) 황태자부터 노동자 계층에 이르기까지 남녀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차와 커피 값을 포함해 1~2실링만 내면 누구나 환영받는 장소였다. (...) 당시 티 테이블 위에는 'T.I.P.S'라고 적힌 작은 상자가 있었다. 이는 'To Insure Prompt Service'의 약자로 "신속하게 서비스를 할 테니 상자에 돈을 넣어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01p)

영국에서 모든 계층이 홍차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약육강식의 사냥터가 된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어린 여자아이와 최하위계층의 일꾼들이 고통스럽게 재배한 차에 카리브 해 노예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인 설탕을 넣고 티스푼으로 휘휘 젛은 것이 바로 '영국식 홍차'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티스푼'이라는 합성어도 차와 설탕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합작품이 아닌가. (128p)

커피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를 여행하다보면 카페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마시고는 바로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서서 파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는 애초부터 여러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물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커피보다 차를 마실 때 좀더 여유롭고 마실 수 있는 양도 차가 더 넉넉하다. (141p)

상류층에서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자 구매력이 생긴 중류층에서 이를 따라했다. 이어 노동계층 역시 중간계층을 모방한다. 차를 마실 때만은 가난한 농부도 부유한 상인이 될 수 있었고, 하인도 주인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국의 홍차 문화는 생산과 소비, 노동과 여가, 남성과 여성, 사치품과 필수품이라는 극단의 요소 모두를 포함하는 특이한 경우다. (159p)

하이티는 산업혁명 시대에 서민들의 바빠진 일상이 늦은 귀가와 맞물려 생겨난 티타임이다. 애프터눈티가 상류층과 귀족들이 밤늦게 이뤄지는 화려한 만찬을 기다리는 동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면, 하이티는 시골과 도시 노동자들 그리고 서민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홍차와 더불어 칼로리가 높은 고기 등을 먹은데서 유래됐다. (216p)

* * *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것에 더 애정을 쏟는 나라 영국. 영국과 홍차의 연결고리를 찾는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은 '홍차 아우라', '홍차 스파이', '홍차 중독자'라는 키워드로 홍차의 감성과 욕망 그리고 미식을 느껴본다. 

홍차가 영국과 영국민에게 어떻게 스며들게 되었는지 '아주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홍차와 관련하여 영국의 정치, 문화를 훑어 준다.  

술독에 빠진 영국의 식탁을 물들인 홍차. 차 한잔에 영국인의 계층이 있고, 그들의 삶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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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고양이 낸시 (엘렌 심, 2015)

 


고양이 낸시

저자
엘렌 심 지음
출판사
북폴리오 | 2015-02-24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트위터에 공개한 작은 그림들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고양이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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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틀렸었어요.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건 저였어요.

고양이인 낸시만 보느라 다른 낸시들은 못 봤어요.

더거씨의 사랑스러운 막내 딸 낸시

지미의 소중한 동생 낸시

친구들을 배려하는 낸시

그리고 모두가 너무나도 아끼는 낸시

다들 저렇게 아껴주는데 어떻게 나빠질 수가 있겠어요."

(226p)

* * *

버려진 아기 고양이 낸시(Nancy)를 두고 지미아빠 더거씨는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내 낸시의 귀여움에 마음이 사르르 녹고 마는데...! 

꺄 :) 이렇게 사랑스러울수가!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흠뻑.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에 매료된다.

"다르지만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헤헤 웃어보이는 낸시를 보면 행복은 여기에 있는 듯하다. 마지막 장 할로윈 코스튬은 보너스♡

* * *

"헤헤..! "

"공주님 기분이 좋아 보여요~"

"네~ 낸시는 정말 행복해요."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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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그들을 만나러 간다 파리 (마리나 볼만멘델스존, 2012)


그들을 만나러 간다 파리

저자
마리나 볼만멘델스존 지음
출판사
터치아트 | 2015-02-0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오늘의 파리가 있기까지 도시에 빛을 부여하고 역사를 창조한 스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중세 최대의 연애 사건 : 아벨라르, 엘로이즈

'선량왕',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를 선사하다 : 앙리 4세

프랑스 계몽주의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 볼테르

비극으로 끝난 호화로운 삶 : 마리 앙투아네트

스스로 왕좌에 앉은 황제, 유럽을 정복하다 : 나폴레옹

19세기 파리의 지치지 않는 기록자 : 오노레 드 발자크

에스메랄다와 카지모도의 창조자 : 빅토르 위고

인상주의를 탄생시킨 화가 : 클로드 모네

열정의 천재 조각가 : 오귀스트 로뎅

파리 요리계의 넘버원 :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 마리 퀴리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사랑했던 여성 작가 :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바람둥이 천재 화가 : 파블로 피카소

'리틀 블랙'을 창조한 패션 디자이너 : 코코 샤넬

실존주의 남성과 파리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 :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작은 참새가 마음으로 파리를 부르다 : 에디트 피아프

작가이자 음악가, 배우였던 만능 재주꾼 : 보리스 비앙

영화를 위한 삶 : 프랑수아 트뤼포

천재와 광인 사이의 스타 디자이너 : 이브 생 로랑

* * *

2,000년 파리의 역사에 빛을 부여한 불멸의 인물들, 그들을 파리에서 만나다. 일대기를 간략하고 재미있게 살펴 볼 수 있어 좋았던 <그들을 만나러 간다 파리>. 파리 시내 지도와 함께 보니 더 재밌었던 듯 하다. 

나는 일대기와 사회, 문화적 코드를 풀어낸 영화를 좋아한다. '아멜리에' 보고 흠뻑 빠져버린 오드리 토투가 연기한 가브리엘 샤넬의 이야기, '코코샤넬'(원제: Coco Avant Chanel, Coco Before Chanel, 2009)이나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귀를 사로잡는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을 담은 '라 비앙 로즈'(La Mome, The Passionate Life Of Edith Piaf, 2007) 처럼 말이다:-) 

21살의 어린 그에게 주어진 디오르[Dior]의 후계자 자리. 트라페즈[trapéze line] 라인으로 그리고 자신만의 패션 하우스를 열어 대성공한 이브 생 로랑. 그와 관련된 영화를 찾아보다 '생로랑'(Saint Laurent, 2014)이 4월 16일에 개봉한다는 소식을 발견.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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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2012)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저자
마스다 미리 지음
출판사
이봄 | 2014-03-15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여자만화가 마스다 미리를 통해 엿보는 남자들의 속마음마스다 미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찾았다!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인류 최초의 남극대륙횡단을 시도한 영국 선원들의 탐험기다. 도중에 조난을 당한 선원들은 얼음의 바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고립된다. 배를 버리고 얼음 속을 걷기로 결정했을 때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소지품을 줄이는데, 모두, 금화를 버리고 가족사진을 선택한다. (27p)

『개 같은 내 인생』. 대학 다닐 때 친구에게 빌려 봤던 스웨덴 영화. 사랑하는 엄마가 병에 걸려 멀리 친척집에 맡겨진 소년의 이야기. 소년은 쓸쓸해지면 라이카를 생각한다. 1957년 인공위성 실험에서 우주로 쏘아 올려진, 홀로 죽어간 개, 라이카. '로켓에는 애초부터 돌아오는 장치가 없었지.' (73p)

쓰치다 씨는 아마도,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귄다면 상당히 잘 맞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어쩌면 결혼까지 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애인과 헤어지면서까지 사귀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면 점점 좋아지다가 조금 싫은 부분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 조금씩 익숙해지며 정이 생깁니다. 그 과정을 쓰치다 씨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이제 귀찮아.' 이 넓은 하늘 아래에는 어쩌면 내게 훨씬 더 잘 맞는 남자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사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92p)

'내일이 아직 무엇 하나 실패하지 않은 새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 (105p)

말썽만 일으켜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퇴학을 당한 토토. 그런 토토가 그다음에 간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넌 사실은 착한 아이란다'라고 계속 말해주었지. 넌 사실은 착한 아이란다.라는 말, 어른이 되어도 모두 듣고 싶은 말이 아닐까. (153p)

인생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찾을 필요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든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나의 집으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은 하룻밤을 자고 다시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164p)

* * *

요것도 재밌다. 마스다 미리가 '남자'의 관점에서 쓴, 30대 독신남 쓰치다의 일상, 직장, 결혼,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만화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느낄 수 있다. 번외편이 더 재밌는. 역시 모든 것은 타이밍 :)

* * *

나의 우주는 어디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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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2006)

 


이름을 말해줘

저자
존 그린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4-10-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언제나 같은 이름의 소녀를 좋아하고 그들은 항상 나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 * *

"린지 리 웰스. 감리교 신자. 나도 테러리스트는 아니야." 그 소녀는 다시 생긋 웃었다. 콜린은 자신과 열아홉 번째 캐서린과 잃어버린 자신의 한 조각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미소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미소는 전쟁도 끝내고 암도 치료할 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48p)

"맞아. 그렇지. 아버지 덕분에 난 일하거나 대학에 다닐 필요가 없어." 콜린은 그 말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하산의 그런 무관심한 태도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가 대체 뭐란 말인가? 신이 삶을 주셨다고 믿으면서 삶에는 TV를 보는 것 이상의 다른 뭔가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다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50p)

"그렇다니까. 연애라는 게 정말 뻔하거든, 그렇지 않냐? 내가 그걸 예측하는 방법을 찾아냈어.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남녀라도 공식에 넣어보면 한 번이라도 데이트를 했을 경우 누가 누굴 찰지, 그리고 그 관계가 대략 얼마나 지속될지 그래프로 나온다니까." (65p) 

맞다, 바로 그거였다. 이미 있는 글을 다시 타자로 칠 수는 있지만 새로 만들어내는 작가는 아닌 것이다. 신동이지, 천재가 아닌 것처럼. 주위가 너무 고요해서 프린세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고, 그의 안에서 잃어버린 조각이 자아내는 공허감이 느껴졌다. "난 그냥 뭔가 중요한 걸 하고 싶어. 아니면 중요한 사람이 되든가. 그냥 중요해지고 싶은 것뿐이야." (139p)

콜린은 실연의 단조로움과 이 관계를 종종 연관 지어 생각해봤다. 우리에겐 32개의 치아가 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이가 하나하나 부러지는 고통을 겪으면 그 반복성 덕분에 둔감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143p)

그는 마침내, 마침내 울고 있었다. 둘의 팔이 엉키던 순간, 바보 같고 유치한 둘만의 농담들, 학교가 끝난 후에 그녀의 집에 가서 창문으로 그녀가 책 읽는 모습을 지켜보며 떠올렸던 감정들이 기억났다. 그 모든 것이 그리웠다. 그는 그녀와 같이 노스웨스턴 대학에 다니면서 언제든 둘이 원할 때마다 자고 가는 자유를 누릴 거라고 생각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심지어 그것까지도 그리웠다. 그가 상상한 미래가 그립다니. (156p)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결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 거야. (156p)

"음, 난 널 좋아해. 그리고 넌 내 앞에 있을 때는 카멜레온처럼 변하지 않잖아. 방금 그걸 깨달았어. 예를 들어 넌 내 앞에선 엄지손가락을 깨물잖아.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습관이라고 했는데, 내 앞에선 그 습관을 보여줬어. 그건 날 타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난 너의 비밀 아지트야. 넌 내가 너의 마음속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222p)

그 순간 린지가 알아차렸다. "아무도 해고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했군요." (282p)

"필요 없는 일이 아니야. 우리 다음 세대엔 공장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너의 자식들과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 공장이 있을 때는 마을이 어땠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거야. 게다가 얘들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너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했지. 세상은 네가 상상한 대로 머물러 있지 않아, 아가." (283p)

이 이야기의 교훈은 과거에 일어난 일은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과거가 되어버리지. 그리고 두 번째 교훈은, 하나의 이야기 속에 여러 가지 교훈이 있을 수 있다면 차는 사람들이 꼭 차이는 사람보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거야. 실연이란 일방적으로 내가 당하는 일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거든." (303p)

* * *

나에게 성장소설은 늘 콩닥콩닥 설레고 조그마한 자극도 크게 다가온다.

똑똑하지만 천재는 아닌 '영재' 콜린. 열아홉 번 째 캐서린과의 이별로 가슴아파 하다 그의 유일한 친구 하산과 함께 하는 여행은 그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때마침 등장하는 린지. 캐서린은 아니었지만 콜린에게 린지는 캐서린 이상의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어린 시절의 풋풋한 정서가 느껴지는 소설 <이름을 말해줘>. 열아홉 살 소년이 겪었던 서로 다른 캐서린과의 관계로 정립하는 공통의 사랑공식. 발상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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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1943)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저자
마르셀 에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8-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프랑스 문학을 빛내는 희귀한 보석 ‘두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뒤티유욀은 꼼짝달싹 못 하고 담벽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그는 여전히 돌과 한 몸이 된 채 그 담 속에 있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 겨울밤이면 이따금 화가 장 폴이 기타를 들고 소리가 잘 울리는 적막한 노르뱅 거리에 나가 담 속에 갇힌 가엾은 벗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추위에 곱은 손가락들로부터 기타의 선율이 날아올라 달빛이 방울방울 떨어지듯 담벽 속으로 동당동당 스며든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35p)

6월 32일

시간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평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 아침 어떤 가게에 들어가 신문을 사려고 하는데, 신문의 날짜가 6월 31일로 되어 있었다. "아니, 이 달이 31일까지 있었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가게 여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문기사의 제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칠 수상 6월 39일에서 6월 45일 사이에 뉴욕 방문'

「생존 시간 카드」 (67p)

"뤼시앵, 네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네가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놀랐다. 그 동안 내게 보여준 것과는 전혀 딴판인 그 글투가 너무나 불쾌해서 주저없이 너에게 3점을 주었다. 주제 전재가 빈약하다고 내가 너를 나무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과 정반대되는 잘못에 빠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여섯 쪽을 채우기 위해서 줄곧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했더구나. 하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어색하게 멋을 부린 그 글투이다. 너는 문장을 그런 식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글은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지."

「속담」 (95p)

"사실은 어머니께 장화 얘기를 했어. 그걸 나에게 사주시겠대. 집에 돌아가면 그걸 갖게 될 거야."

앙투안은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장화는 이제 공동의 보물이 아니었다. 남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고 누구나 꿈을 길어올릴 수 있었던 모두의 우물이 아니라 한 사람만의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칠십 리 장화」 (133p)

* * *

"사람들은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아이들이나 하는 일로 여기기가 십상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현실과 단절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역시 경이로운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담은 어른들을 괴롭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불안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고 때로는 비통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 잡지 『프랑스의 환희』(1946), 마르셀 에메-

* * *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마르셀 에메의 소설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마냥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아서인지 묘하게 설득된다. 시간이 정말 상대적이 된다면? 소오름. 

다음 파리 여행에는 노르뱅 거리에서 마르셀 에메를 만나야겠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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