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2005) 


용의자 X의 헌신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6-08-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6년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2005년 연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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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라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반권의 보관 장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 형사가 올 때를 대비해서 팸플릿 속에 끼워두었다면, 상당한 강적이라는 말이지." (266p.)

- 작은 것 하나까지도 챙기며 철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이시가미. 완벽한 위장 살인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순수하지요. 이시가미라는 사내 말입니다. 그가 구하는 해답은 늘 단순합니다. 몇 가지를 한꺼번에 구하지 않아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 또한 단순해요. 그래서 망설임이 없지요. 사소한 일에 발목이 잡히거나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얻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늘 그런 위험과 같이 하지요." (268p.)

- '순수'하기 때문에 '위험'을 자처한다. 이야기의 반전이 전개된다.

 

"저번에도 말했었지. 고찰이란 것은 생각하고 추론한 내용을 가르키는 말이야. 실험을 해서 예상한 대로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감상에 지나지 않아. 애당초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뭔가를 발견하기를 바래. 어쨌든 좀 더 생각해서 쓰도록 해." (285p.)

- 정확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섣부른 판단에 따른 결론은 또 다른 사건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체념한단 말이지……. 그것이 보통의 인간이 하는 행동이라고. 최후까지 지켜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342p.)

- 그러나 남들과는 다른 그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까지도 희생하는 그였기에… 

* * *

2006년 나오키 수상작이자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영화로도 리메이크 된 소설을 드디어 봤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며 읽다가 또 다른 사건의 조명으로 순간 멍 해졌다. 야스코의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만드는 이시가미. 희망 한 점 없는 마지막 순간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야스코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켜주고자 했던 이시가미의 희생에 말이다.

다시 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야스코를 마주하게 된 이시가미의 심정. 그녀가 뱉은 한 마디로 이시가미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시가미가 꿈꾸는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야스코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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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2007) 


오 해피데이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재인 | 2009-10-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티격태격 지지고 볶아도 집이 있어 행복한 여섯 남녀와 그 가족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흐음, 그렇구나. 노리코는 기운이 쭉 빠졌다. 세상은 15년 동안 전업 주부로 살아온 노리코가 주눅 들기에 충분할 만큼 힘센 자가 판을 치고 있다. (13p)

물건의 인기가 마치 자신의 인기만 같았다.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았던 것도 처녀 시절 잠깐뿐, 결혼한 후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아, 들이쉬는 공기까지 상쾌했다. (19p)

가족이란 엄마와 아내에게는 참 무관심하다. 집 안에 당연히 있는 것, 이라고밖에 여기지 않는다. (27p)

두 손으로 뺨을 마사지하면서 생각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여배우는 타인의 시선을 받으면서 아름다워진다고 하지 않는가. 여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한다. 나는 옥션에서 낙찰자에게 '아주 좋다'는 평가와 감사를 받아 자신감을 얻고 젊어졌는지도 모른다. (31p)

피식 웃는 한편 공감이 갔다. 너나 나나 모두 똑같다. 사람은 관계를 원한다. (39p)

서니 데이라. 어디든 가고 싶다. 바다든 산이든. 결혼한 후로 가족 아닌 사람과는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다. 늘 집을 지켰다.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마흔 세 살이 되었다. (45p)

노리코는 몇 번이나 꽃을 보고, 그럴 때마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 행복한 기분으로 앞으로 10년은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가족이 있다. (48p)

결국 무인양품에서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니며 그릇과 조리도구까지 사고 말았다. 트렁크가 짐으로 가득찼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 좋은 피로감이었다. 쇼핑이 의외로 즐거웠다. (62p)

"남자는 말이야, 혼자서 방을 쓸 수 있는 건 가난한 독신 시절까지가 아닐까 싶어. 그런데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잖아. CD나 DVD는 얼마든지 살 수 있어. 그리고 비싸기는 하지만 오디오 세트도 마음먹으면 살 수 있고. 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단 말씀이야……." (78p)

"가구도 그렇고 조명도 세련되었지? 독신자들이 꿈꾸는 방이야. 좀 좁다 싶은 게 더 좋아. 무엇이든 금방 손에 닿으니까. 난 이 방에 있으면 젊은 시절이 생각나고,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에 재미있고, 푸근하고, 그래서 툭하면 들렀던 거야." (87p)

"그럼 이만 간다." 사카이는 발길을 돌려 힘차게 거실을 나가 복도를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마사하루는 잠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야 음악을 마냥 틀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볼륨을 줄였다. 옛날에 끔찍이도 좋아했던 스팅이 <셋 뎀 프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90p)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식탁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키를 두드린다. 마냥 켜 있는 라디오에서는 주부를 상대로 인생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흐른다. 히로코는 이렇게 소박한 나날이 싫지는 않다. 크게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마흔 살. 명실상부한 아줌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나이다. (103p)

다르게 살 수도 있었으려나. 히로코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삼십 대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지냈다. 인기 있다는 레스토랑 한 번 가지 않았다. 그러다 아줌마가 되고 말았다. 세상 일은 전부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듣는다. (122p)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잠시 동안의 자유 시간. 딱히 백화점에 오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달리 갈 곳이 없으니까 발길이 절로 향하고 만다. 한동네에 같이 가자고 할만한 사람도 없다. 혹시라도 서먹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은 거리를 두게 된다. 주부는 모두 혼자다. (125p)

'빅 서프라이즈, 금일 당사 도산!' (139p)

유스케는 몸이 둥실 뜨는 가벼움을 느꼈다. 홀가분해진 후에야 중압감이 컸다는 것을 느꼈다. 나만 믿고 따르라고 호언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만큼의 책임감은 있다. (142p)

먹으면서 점차 풀이 죽었다. 자신이 제공한 반찬이 맛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반찬에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견뎌 낼까. (146p)

우리 아빠 회사가 망했어요,라.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이들은 솔직해서 좋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내일부터는 가슴을 좍 펴고 아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올 수 있다. (148p)

"낙담하지 말라고. 고진감래라고, 시련은 견뎌 내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니까. 인간 도처에 청산은 있으니……." (157p)

노인이 종이봉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유스케에게 건넸다. <역경을 이겨 내기 위한 50가지 명언>이라는 책이었다. 역경이라. 표정을 관리하기가 곤란했다. (173p)

아쓰코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구나. 우리 부부가 세간의 오해를 사고 있구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의 뿌리가 깊잖아." (177p)

잘되었지, 뭐.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잘되었다는 건지, 자신도 잘 몰랐지만. (183p)

"난 그런 아파트나 있었으면 좋겠다." (189p)

"나 말이지, 이 기회를 놓쳤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시나가와 역 주변은 사무실만 많지 커튼 가게는 한 군데도 없단 말이야. 재빨리 자리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늘 이렇다. 재빠른 사람이 이긴다는 얘기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끝장이라는 뜻이 아닌가. (191p)

에이치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얼떨결에 하루요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상대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아, 그렇구나. 단도직입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우리 남편은 이런 식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225p)

뾰족 서 있던 것이 흐물흐물 꺾인 느낌이었다. 고슴도치가 치켜세웠던 바늘을 옆으로 누인 듯한. 아니면 네모난 치즈의 각이 녹아내린 듯한. 기분 전체가 둥글둥글해졌다. (227p)

* * *

요즘 왜인지 계속 기분이 축축해서  노랑노랑한(밝고 산뜻한) 책을 찾던 중 발견한 소설이다. 제목처럼 '해피'한 하루가 필요했던 것일까. 우연히 읽게 된 것 치고 꽤 잘 선택한 것 같다. (묘하게 끌리는 표지 또한 오쿠다 히데오의 느낌을 발산한다. 매력있다.)

[Sunny day], [우리 집에 놀러 오렴], [그레이프프루트 괴물], [여기가 청산], [남편과 커튼], [아내와 현미밥] 이렇게 6편의 단편으로 묶인 <오 해피데이>. 각기 다른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지만 결국엔 사랑으로! 마무으리 되는 여섯 가족의 이야기이다.

늘 곁에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가족. 일상에선 그리 부각되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까, 잠시 잊고 산다. 하지만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있다 없으면? 적어도 난, 허전하고 이내 불안해진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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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2004)

 


공중그네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5-01-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못 말리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퍼뜨리는 요절복통 ‘행복 바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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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사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라부를 쳐다보자 "저 사람, 블랭킷 증후군이야"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블랭킷…… 증후군?" "그래. 스누피 만화에 늘 담요 끌고 다니는 라이너스라는 남자애 나오지. 거기에서 생긴 명칭." (61p)

"흥, 해." 고헤이가 시키는 대로 히로스케가 코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믿고 모든 걸 맡긴다. 그러니 있는 힘껏 코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공중그네 캐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비우는 일. 가장 좋은 예가 이라부다. (120p)

"감기 예방주사예요. 공짠데 좋잖아요." 간호사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나쁘진 않겠지…….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저항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120p)

"선생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입스는 부정적인 쪽으로 암시를 걸기 쉬운 법이지. 아하하." (232p)

"다른 거요?" "정작 토해내야 할 감정들을 쌓아두고 있으니까, 위 속에 든 음식이 대신 나와버리는 거잖아. 강박증도 그 연장선상이지. 한밤중에 베란다에 서서 허공에 대고 다른 사람 욕이라도 실컷 떠들어보면 어떨까?" (274p)

"저기요, 호시야마 브랜드라는 게 있는 거거든요. 간판에 흠집을 내서야 되겠냐구요." "그러니까 일단, 간판을 내리는 거야. 그럼 홀가분해질 텐데." (285p)

"어쨌거나 인간에겐 변화가 필요해." "휴~." 아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아가 나지만, 납득할 만한 부분도 있다. 지금 자신은 지나치게 방어 자세다. (285p)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305p)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그런 말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306p)

* * *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숨기고 살아간다. 대부분 그러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솔직한 내 모습이 좋아서 나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갔는데 언제부턴가 그 마음의 문이란게 닫혀가더라. 섣불리 남에게 나의 속내 또는 치부를 보이기 싫어지고 결국 나만의 동굴을 만든다.

의학박사 · 이라부 이치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연급 조연이라고나 할까. 이 사람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다. 이상하리만큼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이라부에게는 묘하게 마음을 열게되는 사람들. 뭔가 대단히 특별한 것은 없지만 이라부는 걱정과 근심 투성이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준다.  

실은, 그들에겐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라부를 찾아가게 된 것이 아닐까.  

* * *

조금 엇나갔지만,.. 벌써 85세가 된 워렌 버핏. 최근 이런 기사를 봤다. 그는 자신의 건강 비결이 코카콜라와 아이스크림인데 즉, 6살 아이처럼 먹는 것이란다. 

잠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아이로 돌아간다는 건 왠지 지금 내가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과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고 진실된 나'를 유지하면 그것이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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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2012)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2-12-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히가시노 게이고의 차기 대표작으로 손꼽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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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 인적은 없었다. 누군가 지나간 기척조차 없었다. (37p)

아이를 업은 채 가쓰로는 불길 속을 달렸다. 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거대한 불덩이가 차례차례 습격해왔다. 온몸에 아픔이 내달렸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벌건 불빛과 검은 연기, 그것이 동시에 온몸을 휘감았다. ... 중략 ... 의식이 아득해져갔다. 잠들어버릴 것 같다. 그 편지 글이 희미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147p)

"상담자가 누군지 알려고 해서는 안 돼. 그것도 규칙이야. 누군가 지켜본 걸 알면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상담 편지를 넣지 못해."(173p)

"그런 거야 참 별일도 아닌데 말이야." 아버지는 편지들을 둘러 보았다. "다른 편지들도 그래. 대부분 내 답장에 감사하고 있어.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가만 읽어보니 내 답장이 도움이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이야. 스스로 착실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내 답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 (199p)

하긴 이별이란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나는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269p)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올까. 나미야 잡화점의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갖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지도 모른다. 벤츠가 사라진 뒤, 고스케는 편지를 우편함에 넣었다. 털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십이 년 만에 듣는 소리였다. 가슴에 고인 응어리가 툭 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제야 마침내 결말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고 고스케는 생각했다. (318p)

* * *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난감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편지를 다 읽고 아쓰야는 고개를 들었다. 두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눈빛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447p)

* * *

'힐링(Healing)' 도서로 유명해져 출간 후 쭈욱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가 타임워프(시간왜곡)를 소재로 따뜻함느껴지는 소설을 썼다는게 조금은 의아했지만, 읽다보니 역시 반전매력이 있다.

나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고민을 진심으로 함께 나눠준다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까.

* * *

'나미야 잡화점, 단 하룻밤의 부활'. 그 날이 온다면 난 어떤 고민이 담긴 편지를 적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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