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김영하 산문, 보다 (김영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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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물론 세일즈맨은 고객이 물건을 사도록 유혹할 자유가 있고 고객은 그 유혹에 넘어갈 자유가 있다. 이 때의 자유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정치적 개념이라기보다 강력한 저항이 없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제 뜻을 이루겠다는 힘의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20p)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 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31p)

라캉은 히스테리자를 "자신의 욕망을 만족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려는 주체"로 정의한 바 있다. 영화 전체를 통해 서연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바꾸는 식의 게임을 벌인다. (73p)

부모와 자식 간의 분리는 여간해서는 이뤄지지 않으며 거의 모든 애정관계가 부모(특히 이성 부모)와의 관계를 삼각형의 한 축으로 하여 형성된다. 남자는 연애와 결혼에 있어 반드시 자기 어머니를 삼각형의 한 축으로 상정하고, 여자 역시 아버지를 한 축으로 삼는다. (74p)

비록 우리가 나약한 어린아이로부터 비록되었다 해도, 부모가 우리에게 부과한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 (83p)

전쟁을 다룬 많은 소설들은 대부분 전쟁 발발 직전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시작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전쟁 발발 직전의 인물들은 재앙을 암시하는 나쁜 징조들에 유념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연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곧 아무 의미도 없어질 문제들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 (85p)

다수 동조편향과 정상화 편향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할렘, 일본과 멕시코에서 태연히 살아갈 수 있다. 다른 곳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 (90p)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91p)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선과 악은 지각에 근거하는데, 죽음은 이러한 지각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가장 끔찍한 악인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오지 않고, 죽음이 오자마자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커 슈피어링『철학 옴니버스』, 본문 93p)

우울증 환자들은 인간이 혼자라는 것, 죽을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혼자 죽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삶이 이미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죽음으로 이 절대고독을 끝장내고자 한다. (94p)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본문 98p)

한 작가에게 반복적으로 하나의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관찰될 때, 즉 한 작가가 어떤 특정한 서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모티프 혹은 서술방식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104p)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116p)

"(...)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꺠웁니다. 그래서 연기하면 신이 나는 거에요." (123p)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123p)

"사람들은 영화를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벽에 비쳐지는 평범한 그림인 영화는 현실의 환영이지 실재하는 물건이 아니다. (...) 소설은 전혀 다르다. 책을 읽을 때에는 단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노력해야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 냄새를 맡고, 물건들을 만져보고 복합적인 사고와 통찰력을 갖게 되고 자신이 3차원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다." (폴 오스터『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본문 128p)

"꿈을 꿀 때는 그 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니까요. 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오르한 파묵『소설과 소설가』, 본문 130p)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160p)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을 뿐." (170p)

* * *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 * *

소설가 김영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 사람 글 참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재미있다. 조만간 소장할 책 1위. ('읽다'와 '말하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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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2013)


살인자의 기억법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7-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 그때는 이미 수십 명의 사냥감을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해 땅에 묻은 뒤였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이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인은 시라기보다 산문에 가깝다.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8p)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9p)

"기차 레일이 끊어지는데도 그걸 모르고 화물차가 계속 달려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레일이 끊어진 지점에 기차와 화물이 계속 쌓이겠죠? 난장판이 되겠죠? 어르신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45p)

머리가 복잡하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마음은 정처를 잃는다. (48p)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나를 낳은 어머니, 당신 아들이 곧 죽어요.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혹시 나는 인간 광우병이 아닐까? 병원에서 숨기고 있는 걸까? (48p)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게 유일한 위안이다. 죽기 전에 바보가 될 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테니까. (52p)

배가 고파 국수를 말아먹었다. 먹다보니 맛이 이상하다. 뒤늦게 깨닫는다. 간장을 넣지 않았다. 간장이 어디 있나 아무리 찾아도 없다. 새로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내가 죽은 후에 집 어디선가 수십 개의 간장병이 발견되는 건 아닐까. 설거지를 하다가 다시 좌절. 먹다 남긴 국수가 그릇째로 개수대에 들어 있었다. 오늘 식사는 국수만 두 그릇. (56p)

메모지에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뜬금없이 적혀 있다. 뭘 보다가 적어놓은 걸까. ...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게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약을 드세요"같은 말을 기억하는 게 바로 미래 기억이란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수밖에. (93p)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나같은 사람이 더 위험하지. 박주태가 은희를 죽으도록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105p)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은 날짜를 잘못 알고 하루 일찍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와 같은 것이다. 출발 카운터의 항공사 직원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바위처럼 확고하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태연하게 카운터로 다가가 여권과 항공권을 내민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죄송하지만 하루 일찍 오셨다고 말핟나. 하지만 그는 직원이 잘못 봤다고 생각한다. ...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된다. 그는 영원히 '제때'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채 공항 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126p)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143p)

* * *

간결하게 압축된 남성적인 문체와 단호하고 전진적인 속도감으로 독자의 시선을 움켜줘버린. 그래서인지 '너무' 잘 읽히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연쇄살인'과 '치매'라는 소재를 잘 버무렸다. 살인자와 치매환자가 느끼는 두가지 감정을 모두 풀어내고 있어 신선하다. 가슴에 남았던 내용을 추려보니 살인보단 '치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올 수 있지만 겪지 않아 생소했던 질병이 내 주위사람 또는 나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심있게 봤다. 미래 기억을 잃고 결국엔 현재의 사람도 과거의 사람도 아닌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나'라는 존재.

우리는 남의 고통 속에 태어나 나의 고통으로 죽게된다. 무섭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출생과 사망, 어느 것도 내 의지에 따른 건 없다. 자살을 제외하고 말이다. 

다만 살아간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급 마무리.

 * * *

살인이 치매로 덮어질 수 있는 행동일까? 치매가 오기 전에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은 죄를 받아 마땅하지만 살인과 치매가 모두 현재진행형이었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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