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2015)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저자
진중권 지음
출판사
창비 | 2015-03-2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미학자 진중권, 한국 예술계의 거장들을 만나다! 사진, 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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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케빈 린치라는 미국의 도시계획가가 도시를 이루는 다섯개의 요소 중 하나로 랜드마크를 꼽으면서 중요시된 개념이죠. 역사를 따져보면 서양의 도시들은 대부분 평지에 있었습니다. 어떤 도시를 그 도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불뚝 솟은 인공적 구조물이 필요했죠. 하지만 서울은 이미 자연적인 랜드마크인 산이 있으니 인공적 구조물이 설 필요가 없는데, 서구화가 근대화인 줄로 착각하던 지난 시대에 별생각 없이 그 방법을 그대로 끌고 들어온 겁니다. 세계에 1천만 인구가 사는 도시가 16개 정도 있는데, 서울이 거의 유일하게 산이 있는 곳입니다. (건축가 승효상)

종묘를 혼자 가면 대단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후 네시쯤 가면 아무도 없거든요. 종묘 정전 자체가 엄청나게 장중한 건축이지만, 종묘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 건물 자체가 아니라 월대라는 곳에 있습니다. 월대는 신위를 모신 곳에서부터 1.5미터 내려와 있고, 그 아래 우리가 일상의 삶을 사는 곳에서 1미터 올라가 있는 매개적 공간,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홀로 서면 대단한 힘을 느끼게 됩니다. (건축가 승효상)

중국의 마당은 계급 질서 때문에 만든 마당입니다. 가운데로는 높은 사람만 다니고 하인은 가장자리로 다닙니다. 일본 마당은 교토의 사찰 료오안지(龍安寺)를 예로 들면 아침에 스님이 한번 쓸고 나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모든게 정지되어 있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마당은 뭘 해도 괜찮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고요로 남아서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건축가 승효상)

가장 좋은 공부가 지도 공부입니다. 지도도 한가지만 보지 말고, 가능하면 옛 지도부터 현재의 지도까지 펴놓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공간지각을 통해 기억되는 것은 굉장히 오래갑니다. 이게 어느정도 되면 그다음부터는 지도가 없어도 홀로 길을 걸으면서 변화의 과정을 체험할 수가 있죠. 그게 무진장 재밌습니다. 폐허에 가더라도 공간지각 훈련이 되어 있으면 그저 폐허로만 보이지 않죠. 주춧돌 하나만 있어도 지붕이 보이고, 어떤 풍경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걸 상상하면서 다니는 게 재미있지요. (건축가 승효상)

예술가란 양손으로 이상과 현실을 붙잡고 서로 멀어지려는 두 끝을 끌어당겨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이상과 현실의 긴장을 놓지 않고 그 갈등과 모순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으면서 둘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술가의 중요한 화두겠죠. (미술가 임옥상)

그건 관제미술이지 공공미술이 아니라고 봅니다. (...) 이순신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를 이순신처럼 봐달라고 해서 세운 것이고, 세종대왕 동상은 오세훈 시장이 내가 곧 세종이라는 입장에서 세운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로 공공미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반(反)공공미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술가 임옥상)

저는 "예술은 동사다"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에 행동을 붙이는 것입니다. 예술이라면 사회를 흔들어서 이 사회가 미세한 떨림 속에서 재편되고 다시 제 길을 찾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가야 말로 행동하는 사람이지요. 예술가는 현장에서 떨어질 수 없고, 현장에 끝까지 매달려서 그 현장의 증인이자 기록자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가 임옥상) 

각종 표지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공공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독성입니다. 도시의 가독성이 높을수록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보게 돼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고 환경 자체가 즐거워지지요.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기술이 바뀌면서 디자인도 바뀌어요. 특히 시각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 소통 매체가 달라질 때마다 디자인은 요동치게 됩니다. 활판letterpress이란 납활자를 뽑고 조판해서 찍는 볼록판 인쇄인데, 오프셋은 평판이라서 컬러와 사진 재현에 강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프셋으로 바뀌면서 그래픽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지요. 그전까지는 타이포그라피가 그래픽 디자인 전체였다면, 디자인 표현 영역이 사진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a자를 돌리면 민 ㅎ자처럼 되고, a자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90도 돌려놓으면 ㅎ자 아랫부분처럼 됩니다. 우리가 영어권, 특히 서구의 시각으로 뭘 해석해서 보거나 그쪽으로 따라가잖아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전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알파벳 '알파에서 오메가까지'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글자의 첫 글자인 라틴 알파벳의 a부터 가장 새로운 글자 한글의 마지막 글자 ㅎ까지여야 온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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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 진중권보다는 소셜 미디어로 더 친숙한 진중권이 사진가 구본창, 건축가 승효상, 배우 문성근, 미술가 임옥상, 소설가 이외수,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까지 8명의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변화의 앞에 맞서 있는 그들의 삶과 예술적 감각, 동향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불리울 만큼 서양 건축가에게도 잘 알려진 위대한 우리 건축물 '종묘'. 병산서원 속 자연과 건축의 조화로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인 '만대루(晩對樓)'. 이 두 곳은 꼬옥 가보고 싶다. 그리고 지도를 통해 도시의 변화를 면면히 알아보고 나서 도시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졌다. 공감각적으로 :)) 그게 내가 사는 이 곳, '서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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